소수서원
◆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의 소수서원(紹修書院)은 국사책에 나오는 대로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서원이란 훌륭한 선현의 영정이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인데, 이 내용은 사당과 별 차이가 없고, 서원에서는 사당과 달리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까지 했다.
서원에서 뽑힌 학생들이 성균관 등 대학에 진학을 했으니, 요즘으로 말하면 사립고등학교의 역할도 한 셈이다. 이런 서원중에서 임금에게 서원의 이름과 전답 등을 하사받은 서원을 사액서원이라 한다.
쉽게 말해 사액서원은 임금의 허가를 받은 공식 서원인 셈이다.이를테면 사립학교인 셈이다.
소수서원의 자리는 원래 고려말의 유학자였던 안향이 태어나 자란 곳이다.
그후 조선 중종 37년(1542년)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이 안향을 기려 백운동서원을 설립했는데, 이것이 서원의 효시가 되었다.
그후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재직할 때 임금에게 공식적인 승인을 요청해, 명종 5년(1550년) 임금이 친필로 쓴 '紹修書院'이란 편액을 하사함으로써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다.
소수서원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울창한 송림(松林)이 눈길을 끈다.
수령이 수백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소나무들이 한여름에도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있다. 길 오른쪽으로는 천(川)이 흐르고 있는데 이것이 죽계천이고 그 앞으로 숙주사지 당간지주가 있다.
이 숙주사지 당간지주는 보물 제59호로 이 자리가 원래 숙주사라는 절이 있던 자리임을 말해주고 있다.
주세붕이 이 자리에 백운동서원을 세울 때 원래 있던 숙주사를 깔끔하게 정리해 버리고 서원을 세웠는데, 당시 유교와 불교의 위상 차이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숙주사지를 지나면 서원으로 들어가는 문 오른쪽에 경렴정(景亭)이라는 정자가 있고, 죽계천 건너편에 취한대(翠寒臺)라는 정자가 있다.
두 정자 모두 소수서원의 원생들이 머리를 식히거나 학문을 토론하던 곳이라 한다.
취한대 옆으로는 '경자바위'라 불리는 큰 돌이 있는데, 붉은색으로 쓰여진 '敬' 자가 아직도 선명하게 보인다. 이 글씨에는 연유가 있다. 세조가 단종에게 왕위를 빼앗자 단종복위운동이 있었는데 이 지역에서 단종복위운동을 하다가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들이 처형당하면서 흘린 피가 죽계천을 붉게 물들일 정도였다고 하는데, 그후 그들의 귀신이 출몰해 주세붕이 이 바위에 붉은색으로 '敬' 자를 새기고 위혼제를 지내고부터는 귀신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원으로 들어서는 문 왼쪽으로는 성생단(省牲壇)이라는 도톰하게 올라온 잔디밭이 있는데, 이곳은 제사 때 제물로 바칠 짐승을 잡던 곳이라 한다.
경렴정 옆의 서원 문으로 들어서면 강학당(講學堂)이 있다. 현판에는 백운동이라 쓰여 있다. 강학당 뒤로 원장과 선생님들의 집무실이었던 일신재(日新齋)와 직방재(直方齋), 서고를 모아놓았던 장서각(藏書閣), 문성공 안향 선생을 제를 올리던 문성공묘(文成公廟), 제기를 보관하고 제사를 준비하던 전사청(典祀廳), 학생들의 기숙사였던 학구재(學求齋)와 지락재(至樂齋)가 있고, 주세붕의 영정이 있던 영정각과 유물관이 있다.
이 부분이 본래 소수서원이고 이 뒤로는 새로 지은 사료전시관과 충효교육 관이 있다.
건물들이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수용할 수 있던 학생의 수 역시 그리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사료전시관에는 안향 선생의 영정(국보 제 111호), 주세붕 선생의 영정(보물 제717호), 대성지성 문선왕전좌도(보물 제485호) 등이 있고, 기타 서화류, 목판류, 장서류 등이 전시되어 있고 강학 모습과 제향 모습을 디오라마로 재현해 놓았다. 충효교육관은 160석 규모의 연수시설이다.
입장료는 어른 1100원, 청소년과 군인 880원, 어린이 550원이다.
* 소수서원 관리사무소 : (054)634-3310
잘 정비되어 있는 서원이다. 최초의 서원으로 역사적 가치도 크다. 그러나 굳이 소수서원만을 목적지로 여행할 필요는 없고, 가까이에 유명한 부석사가 있으니, 부석사와 함께 여행 코스를 잡는 것이 좋다.
< 자가운전 >
소수서원으로 가려면 풍기를 거쳐야 한다.
서울에서는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문막휴게소를 지나 원주 못미쳐에 있는 만종분기점에서 우회전하여 중앙고속도로로 접어든다.
중앙고속도로에서 현재 마지막 나들목인 서제천나들목을 나와 제천 방향으로 간다.
이 길은 단양으로 가는 5번 국도와 영월로 가는 38번 국도가 겹쳐 있는 구간이다.
제천 시내를 비껴가다가 영월과 단양으로 길이 갈라지는 사거리를 만나면 단양 쪽으로 우회전하여 5번 국도를 탄다(직진하면 영월, 좌회전하면 제천 시내이다).
이후로 계속 5번 국도를 달려 단양을 지나 죽령을 넘으면 바로 풍기다.
새로 뚫린 국도를 버리고 풍기로 들어가서 931번 지방도로(또는 부석사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하여 10~15분쯤 달리면 소수서원에 닿는다. 풍기부터는 부석사 이정표가 잘 되어 있는데, 이 부석사 이정표를 따라가면 소수서원이 먼저 나온다.
서울 경부고속도로 궁내동 톨게이트에서 약 3시간 30분 거리.
< 대중교통 >
대중교통을 이용해 소수서원으로 가려면 먼저 시외버스나 기차를 이용해 풍기로 가야 한다.
시외버스는 서초동 남부버스터미널에서 있고, 기차는 청량리역에서 타면 된다.
풍기에서 소수서원행 버스를 타면 된다.
경북 영주 부석사
♣경북 영주시부석면북지리,봉황산 기슭에 자리한 부석사(浮石寺)는 사시사철 여행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사찰 중의 하나이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해동 화엄종을 개종한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화엄종의 발원지인 사찰이다.
부석사는 소개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아름다움과 무한한 깊이를 품고 있다. 부석사를 대표하는 것은 대웅전격인 무량수전과 뒤로 사과나무들을 거느린 은행나무길 그리고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전경 등을 꼽을 수 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500m 정도를 걸으면 매표소와 일주문을 지나면서 은행나무길이 펼쳐 진다. 우리나라에는 곳곳에 큰 은행나무와 은행나무길이 많이 있지만, 부석사 은행나무길처럼 운치있는 길은 찾기 힘들다.
길의 폭이 은행나무와 잘 어울리는 넓이이고, 적당히 경사진 흙길 그리고뒤에 무량수전이 기다리고 있다는 기대감 등이 어우러져, 가을이면 이 길이 마치 극락의 진입로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사실 부석사의 은행나무들은 그렇게 큰 편도 아니고 중간중간 다른 나무도 섞여 있어 샛노란 은행나무길을 기대한 초행자는 실망을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 부석사의 보이지 않는매력이다.
은행나무 뒤로는 작은 사과 과수원들이 있어 가을이면 사과가 주렁주렁열린 모습도 볼 수 있다.
은행나무길을 따라 오르다 천왕문 못미쳐 왼쪽으로 부석사중수기념탑과 당간지주가 있는데, 당간지주는 보물 제25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은행나무길의 끝에 천왕문이 있고, 천왕문을 지나면 범종각이 보인다. 부석사 경내의 다른 건물들처럼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고, 있어야 할 제자리에 단아하게 자리한 범종각이다.
범종각으로 곧장 지나기 전에 양쪽의 석탑과 오른쪽의 유물전시관을 보고 가자. 큰 볼거리는 아니지만 숨을 돌리기에 적당한 곳이다.
범종각 밑을 지나면 안양루(安養樓)가 나온다. 안양루 밑의 좁은 돌계단을 올라야 비로서 무량수전에 닿게 되는데, 대가람의 무량수전에 닿는 마지막 길을 이렇듯 좁은 누대 밑을 통하게 했다는 것이 더없이 절묘하다.
안양루를 지나면 국보 제18호인 무량수전(無量壽殿)이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주불전으로 아미타여래를 모시고 있는데, 찰흙으로 빚은 소조상이며, 앉아 있는 좌상이라 흔히 소조여래좌상이라 불린다.
이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되고 규모가 큰 소조 불상으로서 높이가 2.78미터, 머리가 0.91미터, 어깨 폭이 2.06미터이며, 현재 국보 제45호로 지정되어 있다.
무량수전은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알려졌는데, 안동 봉정사의 극락전이 더 오래된 목조건물임이 밝혀져 두 번째로 오래된 목조건물이 되었다.
불가의 건물들은 워낙 소실과 중창을 거듭해 건물의 연령을 어떤 기준으로 산정하는지를 정확히 몰라 두 건물이 얼마나 건립연도의 차이가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봉정사의 극락전은 규모나 형태면에서는 무량수전을 따르지 못한다.
이 무량수전은 우리나라 팔작지붕의 시원(始原)으로 알려져 있고, 주심포 기둥이 절묘한 배흘림기둥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그런 내용보다도 무량수전 오른쪽의 삼층석탑(이 석탑도 보물 제249호이다) 옆에서 무량수전을 바라보면 그저 '잘 생겼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건물이다.
무량수전 앞에 석등이 하나 있는데, 이 석등도 국보 제17호로 지정된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석등이다.
무량수전을 뒤로 하고 삼층석탑 옆으로 난 길을 따라 5분쯤 오르면 조사당이 나온다. 고려 시대의 건물로 국보 제19호이며, 조사당 안을 보면 삼면으로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이 벽화 역시 국보 제46호이다. 그러나 진짜 그림은 떼어내 범종각 아래에 있는 유물전시관에 전시되어 있고, 조사당에 있는 그림은 모사이다.
조사당 건물 앞에 유리와 철망으로 가려진 곳이 있는데, 이 안에 있는 나무가 '선비화'라 불리는 나무이다. 속설에 의하면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지팡이를 꽂아놓은 것이 나무가 되었다 하는데, 이 선비화의 잎을 달여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이런 속설 탓에 사람들이 마구 잎을 따가 유리와 철망으로 막아 놓았는데, 너무 철저히 막아 잘 보이지 않는다. 정식 학명은 선비화가 아니고 골담초라 하는데, 크기는 그리 크지 않다.
끝으로 부석사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부석(浮石)이란 이름은 우리말로 '뜬 돌'이란 뜻이다.
돌이 떠 있다라는 말인데, 실제로 무량수전의 왼쪽 뒤로 부석이 있다. 돌이 실제로 떠 있을 수는 없고 아래 돌과 틈이 벌어져 있다.
이 부석에 대해 말하려면 우선 선묘라는 여인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선묘는 중국 여인으로 의상대사가 중국에 있을 때 의상대사를 몹시 사모했다 한다. 그러다 의상대사가 고국인 신라로 돌아오자 바다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그 뒤 의상대사가 부석사 자리에 절을 지을 때, 이 자리를 도적들이 차지하고 있어 애를 태웠는데, 죽은 선묘 아가씨가 돌을 띄우는 영험을 보여 도둑들이 도망가다 이 자리에 부석사를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해서 절의 이름도 부석사가 되었고, 아직도 무량수전 오른쪽 뒤편에 선묘각이 있고, 선묘각 안에 선묘의 초상화가 있으며, 조사당 내에도 선묘의 초상화가 있다.
부석사의 입장료는 어른 1200원, 중고생 800원, 어린이는 550원이며, 주차료가 소형 3000원, 대형 6000원이다.
부석사는 글로 설명하기에 벅찬 사찰이다. 꼭 시간을 내서 가보기를. 절대 후회하지는 않는다. 사시사철 모두 좋지만 그래도 가을 부석사가 가장 아름답다. 노란 은행잎과 단풍, 그리고 사과가 주렁주렁 열린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석사는 경사진 터에 자리잡은 사찰이라, 매표소를 지나며부터는 계속 오르막길과 계단을 올라야 한다. 그리 경사도가 심하지는 않다. 부석사에 오를 때는 가능한 한 아주 천천히 걸을 것을 권하고 싶다. 주변을 모두 둘러보며 마음을 편안히 하여 보면 부석사의 정취를 가슴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자가운전
서울 ~ 경부(중부)고속도로 ~ 신갈(호법) I.C ~ 영동고속도로 ~ 남원주 I.C ~ 중앙고속도로 ~ 풍기I.C ~ 부석사 (소요시간 : 서울에서 3시간)
부산 ~ 경부(구마)고속도로 ~ 대구 ~ 중앙고속도로 ~ 풍기 I.C ~ 풍기 ~ 부석사 (소요시간 : 대구에서 2시간)
부석사로 가려면 풍기를 거쳐야 한다. 서울에서는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문막휴게소를 지나 원주 못미쳐에 있는 만종분기점에서 우회전하여 중앙고속도로로 접어든다.
중앙고속도로에서 현재 마지막 나들목인 서제천나들목을 나와 제천 방향으로 간다. 이 길은 단양으로 가는 5번 국도와 영월로 가는 38번 국도가 겹쳐 있는 구간이다.
제천 시내를 비껴가다가 영월과 단양으로 길이 갈라지는 사거리를 만나면 단양 쪽으로 우회전하여 5번 국도를 탄다(직진하면 영월, 좌회전하면 제천 시내이다). 이후로 계속 5번 국도를 달려 단양을 지나 죽령을 넘으면 바로 풍기다.
새로 뚫린 국도를 버리고 풍기로 들어가서 931번 지방도로(또는 부석사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하여 30~40분을 달리면 소수서원을 지나 부석사에 닿는다. 풍기부터는 부석사 이정표가 잘 되어 있다.
서울 경부고속도로 궁내동 톨게이트에서 약 3시간 30분~4시간 거리. 부석사 주차장에서 무량수전까지는 약 15분 정도 걷는다.
○ 대중교통
대중교통을 이용해 부석사로 가려면 먼저 시외버스나 기차를 이용해 풍기나 영주로 가야 한다.
시외버스는 서초동 남부버스터미널에서 있고, 기차는 청량리역에서 타면 된다.
풍기나 영주에서 부석사행 버스를 타면 된다.
○ 기차
중앙선 상행 : 부산 ~ 영주(1일 3회), 대구 ~ 영주 ~ 풍기 (1일 8회)
중앙선 하행 : 청량리 ~ 단양 ~ 풍기(1일 10회)
○ 버스
서울 ~ 영주 : 동서울터미널(1일 30회)
대구 ~ 영주 : 북부시외버스정류소(1일 30회), 동대구 고속버스터미널(1일 21회)
출처 : http://www.koreasan.com/index.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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